미녀와 야수
옛날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그것을 좋다고 하실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잔잔히 흐르는 선율에 어울리는 노래가 될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는다고 하여 오래 회자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서도, 들어주는 이가 있으면 읊어 나리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그래, 달 아래서 듣기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달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아이야, 이만 자리를 잡고 누워, 천천히 눈을 감으세요. 눈앞에 무엇이 그려질지 기대가 되지 않나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일방적으로 듣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문장이 작은 소리 하나와 함께 오가더니 곧 들리는 것은 가벼운 웃음과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에 맞닿은 소리였다. 바스락거리는 풀잎이 제 몸을 느슨하게 움직이는가 하면, 잘 정리되었던 침구가 아이의 움직임을 따라 그 형태를 옮기고 있었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있으며, 그 말을 따라갈 터이니. 아이의 호기심이 어쩌면 그저 자신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에 신이 난 감정이 느리게 흔들리는 불빛을 따라 쏘다니다 자리를 잡는다. 가볍게 아이의 가슴께를 다독이는 손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그 목소리는 그 위로 천천히 덧씌워지고 있으니 어찌 한 순간의 평온한 시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가만 아이의 잠자리를 봐주는가 싶더니, 눈을 빛내며 옷자락을 잡아내는 손에 못 이기는 척, 작은 한숨을 쉬며 자세를 바로 했다. 이야기는 듣는 것만큼이나 말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어릴 적부터 배운 것이겠지.
옛날에……, 지금의 현자보다도 훨씬 더 전에 말이죠.
그리 포문을 연 이야기에는 감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수도 있음을 그가 모르지 않았다. 그 단편을 보고 온 이도 그였고, 그 달빛 아래를 걷던 이도 그였으니까.
소중하다 하여, 아이들을 별이라고 부르던 분이 계셨답니다.
별무리의 사이에 함께 흘러가시며 그 자리를 지키셨던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았거든요. 예, 지금 저기 걸린 달의 주위로 빛을 내는, 저 별과 같이 아이들을 귀히 여기셨답니다. 그런 분이 계셨답니다. 지금은 잊혀 불리지 않는 이름이시지만 그 사랑하시는 아이들과 같은 이름이셨다고 보았네요. 아이야, 현명하니 그 이름을 조금은 유추할 수 있지요? 그러니 지금은 잠시 미뤄두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래요, 질문을 먼저 하나 해야겠어요. 아이야,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 무언가를 부탁해 온다면 어떨 것 같나요? 동생이나 친하게 지내던 다른 이들, 소중하여 귀히 여긴 이들이든 말이에요. 들어주고 싶을 것 같나요?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수마가 쏟아지는데 그것을 어떻게 깊게 생각하겠어요. 좋아요. 그 분은 들어주셨답니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고 말하는 이의 호기심 어린, 예, 아이야. 당신처럼 빛나는 눈을 하고 저를 바라보는 이의 말을 거절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저를 서서히 죽이게 될 독약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말이에요. …물론 그게 바로 독약이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아이야, 실험이나 시험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미 누군가가 아는 것이기에 틀려도 답을 정정해주는 게 아니라, 온전히 새로운 것이라 저가 아니면 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을 것으로 말이에요. 맞아요, 지금 당신과 같은 또래의 분들께는 그런 게 잘 없을 수도 있겠네요. 필요한 것들은 전부 정립이 되어 있을 터이니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 예전이라고 하여 그런 게 없지 않았답니다. 다만 감히 그런 것을 시도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했을 뿐이지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을 아나요? 나이 어린 고양이들은 호기심에 행동을 하다 곤란을 겪는 일이 종종 생겨, 그로부터 유래된 말이랍니다. 그럼 호기심에 의해 곤혹을 치른 것은 고양이겠지요. 여기서는 이례적으로 고양이가 아니라, 그 고양이를 귀히 여기던 이가 그리 되었답니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말이에요.
그는 잠시간 뭔가 생각을 하는 듯, 시선만 들어 창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달이 걸려 빛을 내고 풀잎이 나부끼는 소리가 그 목소리에 곁들여진 향이었는데, 이야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냉기가 일렁이며 느리게 숨을 막았다. 시선은 향하나 그것이 무엇을 보는지 알기 어려운 눈이었고, 본인에게도 그런 것이었는지 한참 시선을 고정하던 그가 느리게 인상을 찌푸리자, 아이는 이불 아래로 감추었던 손을 들어 그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당겼다. 방금 말한 호기심 어린 고양이가 저를 가리키는 것도 아닌데 조심성이 짙게 물들어, 방해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제 궁금증도 채워주세요- 말을 하는 것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리게 웃는 색은 다정했다. 그는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에게 내어주지 않은 적은 없었다. 골라내는 것에 시간이 걸려 다소 지연이 되는 경우는 있었지. 아이는 그것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변하는 손끝을 냉큼 이불자락 밑으로 숨겼다. 누가 앗아간다고 하던가. 아직은 어린 티가 나는 행동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춥진 않나요? 원한다면 닫아줄게요. 아이야, 당신이 아프지 않아야 해요. 다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이불을 다독이며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손은 평소에도 조금 차가운 편이었으나, 아이는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익숙하여 혹은 그 마저도 궁금함을 어찌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상정이 되는 이유는 많으나 부러 하나를 골라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아이가 더 보채는 것은 원치 않는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고, 아이도 굳이 내뱉지 않는 것을 캐물어 심기가 상하게 하지 않으려 함일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에게도, 그에게도. 지금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두 사람은 아니었으니.
그래요. 사실 자세한 건, 저도 알지 못해요.
알 수 없었답니다.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으며, 기록이 없다면 알기 힘든 것이 옛날에 있었던 일에 관한 게 아닌가요. 미안해요. 이야기를 죽 이어놓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니 기분이 상했나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니 조금만 이해를 해주세요. 저주에 걸린 것처럼, 서서히 퍼지는 독은 그것이 독인지 알기 어렵게 한답니다. 그러다 콱, 그 숨을 한 번 막을 때가 되어야 깨닫게 되지요. 어쩔 수 없답니다. 알지 못하니까요. 아셨더라면 그분께서 그런 선택을 하셨을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명한 분이시랍니다. 아이야, 순환한다는 말을 알지요? 사람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러한 사람이 있었다면, 또 언젠가 이런 사람이 나타날 수 있어요. 다만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을 뿐이에요. 그러니 몰랐답니다.
당신께서 귀히 여기신 아이들이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는 것도, 당신께서 그것을 무력하게 보고만 계셔야 했던 것도, 저가 귀히 여긴 아이의 배신도, 아프게 숨을 막아오며 당신을 죽이려 들었던 것도. 전부, 모르셨답니다. 아셨어도 선택하셨을까요. 어쩔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실까요. …그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 잘은 모르겠어요. 그래요, 아이야. 믿었기 때문에, 그 호기심 뒤에 감추어진 게 욕심인지 모르셨기 때문이에요. 아셨더라도, 그랬더라도 바라만 보셨을지는 글쎄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저 가벼운 이야기일 뿐이니, 크게 신경은 쓰지 말아요.
그래요, 그게 궁금하겠네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내가 알고 있는지가 궁금한 게 아닌가요? 아이야, 알고자 했기 때문에 알았던 것은 아니랍니다. 그랬다면 잘 알지 않나요. 나는 분명 모든 걸 전부 알고자 하였을 것이고, 부분적으로 모르는 부분이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 않았을 것도요. 당신이 모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그로부터 곧잘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나요? 오, 이런. 내 오해라면 미안해요. 그와 사이가 좋다고 할 순 없는 관계거든요. 네, 맞아요. 사실 이 다음 이야기는 별 거 없답니다. 그렇기에 이리 사담으로 얼버무리고 있어요. 아이야, 달빛이 나려 앉으니, 이만 잠자리에 드세요.
호기심만 더해놓고 쉬이 잠들라니, 이게 무슨.
아이는 무엇이 불만인지 꿍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고, 그는 일어나 손을 뻗었다. 가만 달을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닫는 손이 자연스럽게 흘렀으니, 아이는 더 의문을 이야기 하지는 못했고 다리가 불편한 이를 오래 서있게 한들 좋지 않음도 알 정도의 나이였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다만 알고 싶은 것에 답을 얻고자 하는 성격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지. 아이의 질문에 그는 걸음을 옮기던 것도 멈추고 한참 아이를 바라봤다. 답을 고르는 것인지, 그저 알려주기 싫어 일부러 입을 다무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표정으로 웃는 이를 말릴 재간이 아직 어린 아이에겐 없었다. 알기 어려운 사람이라서, 제 어머니도 꺼림칙하게 여겼던 것은 안다.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그저 잠이 들려는 듯 눈을 감으며 그저 저가 들은 이야기가 흘려 지나가는 옛날이야기인지라, 자신이 아는 여지껏의 지식을, 상상력을 더하여 즐거이 바라볼 수 있길 바랐다.
후, 길게 이어지지 않은 짤막한 숨이 일렁이던 촛대를 끄며 느리게 움직였다. 옳게 볼 수 없는 시야에, 어두운 것은 그리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손에 들린 스틱이 바닥에 닿으며 내는 소리가 아이를 잠결에 괴롭히지는 않을까, 제 아무리 신경을 크게 안 쓴다고는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가 넘어질까 노심초사 하던 사용인 하나가 촛불이 꺼지자 다가가 그의 소매를 붙들었다.
오늘 남아계시기로 하셨던가요?
홀로 두고 보기 어려운 분이시잖아요.
이런― 어쩌다가. 농담이라도 하듯 능청스레 모르는 척 웃어넘기는 그의 행동에 불퉁한 어조로 대꾸하려던 이는 부스럭, 이불자락이 움직이는 소리에 끌끌, 혀만 차고 넘어갔다. 그것이 또 재밌다는 듯 소리 없이 웃은 이를 노려본들 그가 표정을 옳게 본 적은 없었지.
특이한 사람이었다.
나기부터 특이한 사람이었다. 쌍생으로 난 것도, 홀로 잔병치레가 크게 없었던 것도 전부 이 집안의 사람이라고 하려니 조금은 특이한 것이었다. 그 머리카락의 색이, 눈동자 색이, 성격이 증명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괴짜 정도의 수식어가 다였을 터다. 특별히 한 분야를 좋아하던 이들과 달리 그저 이야기가 좋아서, 그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능란한 이들과 다르게 서툴고 어설프기만 한 이. 그 속내를 모르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하지 않았다. 걸치는 웃음은 자연스러웠고 믿어 의심하는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지. 귀한 아이가 먼저 떠나갔을 때도 그는 어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것이 제 이름이려니 했었고, 뭔가 크게 앓은 적이 없으니 혹여 다른 문제가 생길까 아끼고 염려하여 저를 칩거하게끔 해야만 했다고 이해하고 넘어갔음 몰라도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물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라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아이가 달라고 했던 것은 책이었고, 이야깃거리였지. 무어, 그것이야 지역적 특색을 생각해보아도, 집안의 내력을 살펴보아도 얼추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주 눈에 띄는 특이한 점이라면 그래,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일까. 그러나 그게 특이하다고 하려니, 따진다면 그에겐 돌이킬 수 없는 흉에 불과했다. 불편하더라도 저가 알아서 하려는 것이 몸에 오랜 시간 베어 남은 향이니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은, 물에 내어놓은 어린 아이 마냥 어딘가 가벼이 여기는 구석이 있어, 제 몸을 사리는 선택도 귀찮다고 미루는 행색인지라 염려가 되었다면 되었겠지. 그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한참을 칩거만 하던 이가 돌아다니기 시작을 한 것에 다들 불안한 시선을 갖고는 갔으나 이야기가 오가는 걸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것이 퍽이나 즐거워 보였던 탓에 아무도 무어라 말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할 이유가 없지. 그는 알아서 잘 해온 사람이니.
또, 또 있지 않나요. 황제들이 오시잖아요! 그 친우의 증표를 가진 분들이 오시잖아요! 상념에 물들어 한참 무언가를 되짚으며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틈서리에 순한 목소리가 섞여 들어 조금 더 소란스러운 이야기를 일궈낸다.
그래,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고민을 했었어.
이야기가 좋다고 쫓아다니시다 문제라도 나신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럴 분은 아니시라는 걸 알지만요. 염려가 되는 것은….
물론 자세한 사정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으니 난무하는 것은 추측이었고, 기척도 없이 내려와 이야기를 들으며 차를 넘기던 그가, 부러 소리를 내어 찻잔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별 희한한 이야기로 흐를 뻔했다. 그런 것에 질타를 보내는 이는 아니었으나 또 그것이 염려가 되어 한소리 하려고 입만 열면 또 귀신 같이 알고 말을 자르니 한참을 침묵해도 그는 크게 이야기를 내어놓지는 않았다. 순진한 목소리의 주인이 아이라는 걸 떠올린 덕이겠지.
오늘은 이야기를 안 해주실 거예요?
아이의 물음에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한참 창 너머의 달만 올려다 보다 곧 작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아이야, 오늘은 조금 각색을 해볼까요? 듣고자 하는 이야기가 따로 있음을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어째서인지 알지는 못하였으나 아이는 그 궁금증에, 각색된 이야기는 또 어찌 흘러갈까 더하여 넣는다고 한들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이야. 먼저 올라가 기다리세요. 오늘은 할 일이 좀 있네요. 잔잔한 목소리에 아이는 다른 불만은 토로하지 않았다. 한창 바쁜 사람이라는 것은 모를 수가 없고, 그것이 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아이는 알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이 저택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실, 해줄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전에 본 동화가 생각이 나서, 그것에 맞춰 이야기를 조금 뒤틀면 완전히 새로운 구성이 되어 버린다. 유니스 아가테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분명 저가 늦게 잠들면, 나중에 찾아가 뵌들 분명 그 드문 눈짓으로 한 번쯤 이야기를 언급하고 넘어가실 것을 알면서도 어쩌겠는가. 그는 하나뿐인 이종조카의 부탁을 거절할 만큼 회피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 그래. 무어라 각색을 하면 좋을까요. 당신의 이야기가 되어줄 것을 무어라 해야 기분이 덜 상하실까요? 혼잣말이 일렁이며, 질 좋은 종이의 결을 따라 무언가를 적어내는 펜은 그 흐름을 끊이지 않게 했다. 어쩌면 크게 신경을 안 쓰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달이 떠올랐으니, 별들이 조잘거릴까요. 그 달빛이 무엇을 보여줄까요.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는 가만 제 할 일이 끝나니 손에 들린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걸음을 움직였다. 아이가 애가 타서는 그를 부르러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도 부러 늦장을 부린 것이겠지. 성격이 나쁜 편이긴 하나 무어라 지적을 하려니 큰 문제는 또 아니라는 게 얼마나 우스운가.
어찌 이야기를 바꾸시려고요?
당연 아이는 궁금한 것을 물었는데도, 그는 웬일로 안경까지 꺼내 쓰고 책 한 권을 손에 쥐었다. 흔한 동화책이나 읽어주려는 건가, 생각을 하려니 손에 들린 것이 동화는 아니었다. 두껍고 무엇이 담겼는지 알 수 없는 표지를 보더니, 아이는 실망이라도 하는 듯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완전히 침대에 몸을 뉘였다. 글쎄요, 어떻게 바꾸는 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은 분명 그인데도 왜 제게 묻는지 아이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당연하니 눈만 깜빡이는 것에 소리를 내어 웃은 그는 가만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느긋하게 말꼬리를 잡았다.
무엇을 이야기하든 말이에요. 네가 직접 그리지 못하면 재미는 없을 거예요.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문장을 읽기만 하는 게 아니었잖아요, 늘. 그 문장이 가진 이야기의 배경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그 사소한 것이 즐거움이 되어주는 때가 생긴답니다. 당신이 그리 하겠다고 한다면 분명 재미가 없는 것도 빛을 바랜 종이에 적힌 옛날이야기처럼 재밌을 거예요. 아이야, 어떻게 생각해요? 한마디가 저리도 길어진다. 아이는 몇 번 눈만 깜빡이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재미가 없더라도 이야기는 항상 있었으면 해요. 그는 그 말에 작게 웃었던 것도 같다.
달빛이 환하니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차갑다고 느꼈다. 아이는 왜 그가 매번 창을 열어놓는지 알지 못했다.
옛날에, 별들을 사랑한 분이 계셨답니다.
자신의 형제와 달리 소중한 아이들을 별이라고 부르셨어요. 아이야, 너는 별을 소중히 여기는 게 누구일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달. 예, 그럴 수도 있답니다. 무수한 별이 없다면 항상 그는 저 하늘에 홀로 계셔야 할 테지요. 정말 많이 사랑을 하셨어요. 무언가를 바라는 별이 있어, 그 빛나는 눈에 깃든 호기심을 도와주시기로 하셨지요. 그것이 그에겐 저주와 같았어요.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그를 옭아매는 계기가 되게 하였으니까요. 당신의 소중한 아이들이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고, 자신은 그곳에 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매인 것들이 숨통을 막아내는 것도 어떻게 풀지 못하셨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을 눈만 깜빡이며 보고 있었다. 저번에 한 이야기와 큰 틀이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을 각색하겠다는 것인지도, 여기서 무엇이 달라질지도 아이는 예상이 가지 않았다. 알고 있는 내용은 전부 들었으니 분명 이 뒤에 이어지는 것이 바뀌었다는 의미일 것인데, 아이는 그것을 그로부터 들은 적이 없었다. 다른 어른들을 향해 의문을 던져도 다들 모른다는 답을 했다. 그것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게, 눈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이었다. 정말요―? 놀리는 것처럼 부러 말꼬리도 늘여가며 웃은 이가 그렇게 미웠던 적은 처음이었다고, 아이가 제 어머니의 품에서 투정을 부렸었다. 아무리 투정을 부려본들, 그는 옳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으니 아이는 또 여전히 의문을 그대로 삼키며 다음 문장이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빛이 흐드러지게 나린 옷자락의 새로 말소리가 다시 섞이면, 제 눈꺼풀은 무겁게 감기기 시작할 것 같았다.
분명 차가운 색이라고 여겼던 것이 어째 따뜻한 것처럼 느껴지는 게, 문득 아이가 시선을 옮겨 달빛을 바라보았을 때는, 날이 맑은지 유독 환히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저주 같이, 그렇게 말을 한 이의 이야기와 상반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깜빡,
아이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풍경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 풍경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창 틈새로 비추어 드는 달빛의 아래에 있는 게 퍽이나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바란 적은 없기에 저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구하러 갈 사람도 없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동화에 맞춰 걸음을 옮기지만, 아이에게 있어 그것이 신선했을 거라고도 생각은 들지 않을 터였다. 그 사람의 이야기니까 분명 시야는 흐리게 유영하고, 이야기는 이리저리 일부러 혼선을 일으켜 호기심이나 키워보라며 부러 묘사가 늘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게 강한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에둘러 말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야기는 흘러가는데, 그 흐름의 중심에 서있는 이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마냥 주위만 둘러보고 있고, 아둔한 짓만 한다. 떨리는 문장이 느리게 바닥과 벽을 채우고, 그것을 읽기도 어렵게 한다. 이야기를 쓰는 게 서툰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건데 그것을 알기가 힘들다. 서툴게 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아닌데 오늘은 더 그런 것 같다. 이야기가 진부하니, 알기 어려우니, 지루하게 흘러가니 수마가 몰려드는데 쉽사리 눈은 또 감기지 않았다. 알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알고 싶은 감각이 잠을 깨우면서도 어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내심이 적은 것은 아이의 쪽이었다.
남자는 부러 소리까지 내가며 책을 덮었음에도 아이는 깊게 잠들어 뒤척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잠기운이 쏟아질 게 뻔한 시간에 호기심만 끌어올렸다고는 하나 아이가 그것을 흥미진진하게 상상을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진부하고, 지루한, 아이가 몇 번이고 읽었던 동화를 다른 문장으로 바꾸어 설명하기만 했을 뿐이니 아이가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물론 불만을 느껴 투정을 부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했으니 짓궂은 장난으로 부러 이야기를 뭉뚱그린 것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
동화는 내면을 가꿀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애써 만들어진 것이다. 심드렁한 눈으로 책장을 흘긴 남자는 어딜 봐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주 작고 소소한 이야기에도 기뻐 웃으며 고개를 주억이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눈을 깜빡이며 찬 달빛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동화는 항상 가장 좋은 결과만을 보여준다. 정확히는 그렇게 만들도록 편집이 되었으니 별 수 없는 것들이지. 그가 좋아할 법한 것들은 아니었다. 생동감도 뭣도 없는 그런 문장들을 좋아하진 않는 그 성향에 무엇에 충분히 만족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지금 당장 그에게 있어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닐 터였다. 달이 밝은 시간이고, 만물이 잠들어 고요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며 풀잎을 춤추게 하는 때였다.
손에서 들고 넘기던 책은 따진다면 표지만 지루한 것이지, 그 내용은 동화와 다를 게 없는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 두께나 쉽게 내용을 가늠할 수 없게 하는 내지를 보고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다운 사랑이나 용감한 모험을 다룬 이야기라고 쉽게 착각한다. 과연 그럴까요. 의문에 대하여 그는 늘 답을 해준 적이 없었다. 의문을 의문으로 되돌려주는 일은 할 진들 그 의문을 멈추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게 까무룩 잠이 들기 직전까지, 아이가 생각하던 것이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저의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인 탓에, 그 어떤 이야기든 듣는 게 훨씬 편하고, 늘 즐거웠다. 그럴 수밖에, 그럴 수밖에. 제 이름을 걸고 해온 것은 여태껏 들어온 것들의 전달 이외의 것은 없었으니까 그것을 핑계로 삼아 걷고 있었다. 걸었느냐 묻는다면 또 그것은 아니라서,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그것 하나는, 그것만큼은 제 입으로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만도 같은데,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고 하니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야기를 뱉기도 어려워 그 한 문장을 뒤쫓는 것도 벅차다. 저가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읽히지 않는다. 가독성도, 흥미를 끌어내는 것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장일 뿐이었다.
미인은 어찌 하여 돌아왔을까. 야수는 왜 그를 사랑해야겠다고 여겼을까. 그저 마음이 변해서, 그저 그것이 기회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알 수가 없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이였고 저가 늘 바라던 것을 보여준 것과 다르지 않으며 함께 있어주었다. 자신을 두려워하면서도 내면을 바라봐주었고 특별하였으며…. 무수한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었다. 아니, 한쪽에겐 가능해도 다른 한쪽에는 또 어려웠다. 왜? 분명 둘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것임이 분명한데 왜 그게 또 되지 않는지 알기란 또 힘든 길이 되어버렸다. 이야기는 단순한데, 깊게 파고드니 그렇겠지. 그럼 그러지 말아야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려니 부족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려니 그것도 정답은 아닌 사람이었다. 문득 들려오는 오르골을 따라 느리게 걸음을 옮기면 시간은 여전히 달이 밝고 환하여, 그 발아래의 호수가 맑게 들어오는 때다. 의문을 밀어두시라 저가 말을 했으니, 저 또한 그것을 밀어두면 되는 일인데도 쉽지가 않아 그런다고 변명을 하려니 또 그것은 알맞지 않았다. 알지 못하여, 아둔한 점이 있는 사람이 생각해본들 답은 동화처럼 간결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지는 않았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그게 어떻게 살아가는 모습인 걸까요.
남자는 문득 제게 망토를 둘러준 이를 바라보다 눈을 깜빡였다. 자신들의 이야기에서 저주는 이미 사라진 것과 다름이 없지만, 모든 이들의 저주가 풀려 사람으로 돌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제 시간은 그에게 찰나이고, 그의 찰나는 제게 영원이니 그것은 누군가에게 괴리를 불러오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되짚는다면 분명 닮은 부분이 많을 것도 같은데, 또 적고 없다. 이래저래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동화로 만드는 것도 일이다. 투정을 차마 하지 않아도 그걸 빤히 아는 이의 공간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이 현실이니 된 것이 아닌가. 꿈을 바라보는 것보다 제 이름으로 온전히 딛고 선 게 있으니 동화의 결말에 가깝다고, 그렇게 여겨도 괜찮을 순간이기에 남자는 그저 느리게 웃었다. 이야기는 복잡한데, 제 이름으로 풀어내니 단순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참으로 우습고 이중적인 모습이 아닌가. 당사자가 아니니 복잡하게 얽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탁하게 변한다. 현재면 충분하다. 현재라면. 다만 당신에게 저주를 거는 것은 다른 이도 아닌 자신임을 알고 있다. 알 수밖에 없지.
제 평생은 당신께 찰나이니. 저는 야수와 사랑에 빠진 미녀가 아니라, 그 저주를 건 마녀가 맞겠지. 애초에 요정의 마법이었던 왕자와 당신도 다른 사람이시니. 누군가가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마법이지만 스스로 각인이 되는 기억은 저주일 뿐인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겁니다.
인간은,사람은.
그럼,
남게 된 당신은?